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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과정 스토리/기획자의 시점

비둘기의 모험 기획스토리 1편 - Pigeon's Adventure

by SPNK 2022.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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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의 꿈

문득 내 방에서 창밖을 보는데 빌딩과 빌딩 사이를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는 비둘기를 보았다. 인간은 태초부터 z좌표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비행기가 바로 그것이며, 엘리베이터도 그것이다. 나는 비행에 대한 이상을 게임을 통해 구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관념의 구체화

나는 바로 전화를 때려 개발자 친구에게 아이디어를 설명 해주었다. 나는 뭐든지 시작하고 본다. 감당할 수 있는지는 염두하지 않는다.

개발자 친구는 이 아이디어가 흥미롭지만 구체적인 속도로 따라잡으려는 눈치였다. 머릿속의 아이디어는 언제나 관념과 감각으로 이루어지기에 모든 것이 유기적이고 완벽하게 작동한다.

하지만 물리적 현실로서의 구현 단계에선, 어떤 경계를 넘어 구체화가 필요해진다. 이때 개발자와 기획자의 역량에 따라 구체화가 될지, 현실화가 될지 나뉜다.

완벽한 형태의 순수 아이디어는 고차원에서 3차원으로, 그리고 키보드의 2차원과 컴퓨터 속의 1차원으로 이동하고 나면, 처음 나를 가슴 뛰게 만들었던 순수와 신비는 사라진다.

하지만 내가 구별하지 못했던 인지적 차원의 아이디어로 변주되어, 보다 사실적인 동력을 부여받는다. 아마 100일 휴가를 나온 아들을 본 부모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게임적 문법: 게임성

이전까지는 게임 아이디어를 그려낸다는 개념을 몰랐기에 내가 들려준 아이디어는 관념적이고 감각적이었다.

영화 각본을 쓰는 나는 영화적 문법에 익숙해져 있었다. 영화적 문법은 내가 태초에 생각한 어떤 감각을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 플롯에게 주제의식에 따라 행동을 그냥 부여하면 된다.

"감각을 최대화시키는 방향으로 말이다. "

하지만 게임적 문법은 영화의 문법과는 달랐다. 단편 영화, 장편영화, 드라마의 문법 차이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게임은 수동적인 매체도 아니고, 상호작용일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능동. 플레이어의 조작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어떠한 행동을 그냥 부여할 수 없다.

개발자가 의도한 것조차도,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찾게 되는 방향, 자의적인 판단으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주제, 이야기보다는 게임성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나는 개발을 기획한 처음부터, 게임이란 매체를 통해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방법을 깊이 고심했다. 게임적인 것이 뭔지, 게임성이 뭔지. 아쉽게도 게임성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합의되지 않았다.

게임의 스펙트럼은 기술의 발전과 동반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매체의 한계가 아직까지도 특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게임의 원칙은 존재했다.

"닌텐도의 게임을 하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캐릭터를 조작함으로써 감각하는 원초적 재미 말이다."

게임 형식에 촉진되는 아이디어들

내가 만들 게임의 게임성을 내 나름대로 정의하고 나면, 이제 게임의 형식에 맞춰 생각해야 한다. 형식은 아이디어를 제한시키는 게 아니라 창의력을 부추기는 것이다. 처음으로, 플레이어는 비둘기, 활동 지역은 도심, 장애물은 도심지의 요소를 생각했다.

비둘기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도심의 모든 것은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피해야 할 대상이다. 그때서야 나는 무언가를 피하고 끊임없이 생존하기 위해 분투하는 비둘기를 그려냈다.

빌딩 사이를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는 비행의 자유라는 처음의 아이디어는 많이 동떨어지게 되었지만, 인지적인 게임성이 부여된 것이다. 더 깊이 파고들어, 비둘기의 속성을 짚어보았다.

흰색 비둘기는 인간 사회에 있어서 성경에도 나오는 굉장히 상징적인 존재지만, 도심에 있는 회색 비둘기는 혐오스러운 유해동물이다. 같은 종이지만, 색깔 차이 하나로 사회적인 지위에서 괴리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적인 문법은 이 괴리감에 어떤 주제의식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 플레이에 적용을 시키는 것이다. 나는 속성을 다변화시키기로 했다. 흰색 비둘기는 인간에게 친화적인 속성, 회색 비둘기는 인간에게 적대적인 속성으로 말이다.

흰색 비둘기는 올리브 나뭇가지를 입에 물어 상징적인 존재가 되기를 자처하면, 사람들은 만두를 던져 준다. 하지만 회색 비둘기는 사람을 피해 다녀야 하고 음식은 쓰레기를 주워 먹어야 한다. 질투심 때문에 흰 비둘기를 잡아먹기도 한다.

"이렇게 정한 플레이 속성을 기반으로 기획 속에선 유기적인 소사회가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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